고즈넉한 산사로의 여행~고흥 능가사~
고즈넉한 산사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산사~~
전라남도 고흥군 팔영산 자락에 있는 능가사
능가사는 삼국시대 아도화상이 창건하였으며 팔영산 하단부에 있는 평지형 사찰로 일명 보현사라고도 전한다.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인조 22년(1644)에 벽천대사가 현 위치에 2개동의 사찰을 중건하여 능가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다포계의 팔작지붕을 한 건물이다.
일단의 시멘트 기단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약간 거칠게 다듬은 원형기둥을 세웠다.
원본보기~http://blog.daum.net/photo4782/13674922
기둥에 비하여 조그마한 기둥머리가 창방과 용머리를 지지하고 있으며 그 위에 다시 용의 형상을 조각하여 장식한 용머리가 외 3출목,
내 4출목의 공포를 받쳐주고 있다.
살미첨차의 앙혀의 굽변은 완만한 곡면을 이루고 위로 올라갔으며 첨차의 곡면 역시 약간 경사를 두고 비스듬하게 깎았다.
중앙칸은 4분합문이며 기둥 사이 포가 3조 있으며, 협문은 2분합문으로 기둥 사이 포가 2조, 퇴간은 외여닫이문으로 주간포 1조가 설치되어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겹쳐마이며 직경이 큰 서까래가 거의 간격을 두지 않고 설치되어 있다.
내부는 조그마한 닷집이 4개의 높은 기둥에 결구되어 있으며 넓은 공간을 4개의 대량과 4개의 높은 기둥이 지지하고 있다.
내부공포는 운공형으로 조식되어 있는 살미첨차가 커다랗게 결구되어 있으며 맨밑에는 용의 몸통 부분으로 받쳐지고 있다.
천장은 층단천장으로 되어 있는 우물천장이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창호의 무늬는 빗살무늬문을 하고 있다.
또한 특이한 것은 건물 방향이 입구 때문에 북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후기의 건물이지만 규모나 양식면에서 귀중한 유산이라 하겠다.
건물 전체가 기울어 1999년부터 완전 해체 하여 2000년 12월 완전 복원하여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규모가 다른절에 비해 크고 웅장하다.
능가사적비는 방형에 가까운 자연석 좌대위에 귀부를 올리고 그위에 비신과 지붕을 가춘 완전한 형태의 비이다.
좌대 거북머리는 용머이화 되었으나 목이 짧아 웅크린 모습이며, 입안에 여의주를 머금었는데 측면에서 봐야 알수 있다.
-능가사 천왕문
목조사천황상이 있다.
사천왕상은 원래 인도 재래의 방위신인데 불교에 흡수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천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는 대략 6세기말이나 7세기초로 보고 있다.
감은사지 사적기에 사천왕상이 조각된 것을 보면 7세기말에 사천왕상이 많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8세기가 되면 사천왕상은 인왕상과 함께 만들어지다가 9세기 이후부터는 주로 석탑이나 부도의 기단부에 활발하게 조각된다.
1995년 천왕문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초창 연대는 조선 현종7년(1666)이며, 중창은 조선 순조 24년(1824),
3창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으로 세 번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를 뒷바침해 주는 자료로 조선 숙종 16년(1690)에 세운 "능가사 사적비"에 천왕문과 사천왕상에 대한 시주자 명단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천왕문의 상량문에서 밝혀주고 있듯이 초창 연대가 1666년이므로 천왕상 역시 이때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마지막 남은 가을의 흔적을 찾아 떠난 고흥 능가사로의 여행에서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감상하며,정신 없이 달여온 2009년을 마감하는 여행이였다.
많은 절들을 여행했지만 이곳 능가사는 다른절들과 건축물에서 많이 달랐다.
처음부터 해달문을 시작으로 대웅전과 스님들이 수행하시는 모든 건물들이 평지에 있다는 것이다.
웅상화하거나 본인을 높이기 위한 높은 곳에 짓거나, 아님 몇개단 위에 건축하는 방식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그래서 평온하고 고즈넉한 능가사 였다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임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