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5월. 억압과 모순은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5월을 기념하기에는 상처가 아직 봉합되지 않았다. 예술이 그러한 오늘의 현실로 걸어들어왔다. 당대의 아픈 현실이 예술 안으로 스며들었다.
80년 5월 항쟁의 마지막 불꽃이 산화했던 옛 도청에서, 지금은 검은 장막이 처진 옛 도청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벌써 두 달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옛 도청에서, 5월 미술전 ‘벽을 문으로’가 열리고 있다. 5·18민중항쟁 29주년 기념행사위원회가 주최하고 (사)광주민족미술협회가 주관했다. 27일까지.
예술이 당대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면 이미 옛 도청 스스로가 거대한 예술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면 이 시대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과 마주할 수 있다.
한국화 속 은은한 달빛과 어울어진 한 그루의 소나무 처럼 서정적이다. 그러나 그림 속에는 소나무 대신 철제탑의 두 노동자가 위태롭게 서 있다. 허달용의 ‘낮달’. 철제탑 대신 소나무였다면 아름다웠을 풍경. ‘고통분담’의 논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2009년 5월의 현실이 여전히 엄혹하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은 고공농성과 망루와 천막으로 붐빈다. 김화순의 ‘선진화하는 대한민국의 숲’에선 말 그대로 고공농성이 벌어지고 있는 철제탑들의 숲이다. 벼랑끝으로 내몰린 자들이 철제탑을 기어오르고, 천막을 치고, 망루를 세운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는 한결같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다.
박철우 씨의 그림 속에는 80년 5월27일 새벽 도청에 남아있던 시민군이 있다. 두려움으로 가슴 졸였을 젊은 시민군이 M1 소총을 들고 창밖을 바라본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창 밖의 금남로는 오늘의 금남로다. 그러나 그 오늘은 80년의 5월과 같지 않다. 80년 한마음이었을 5월 단체들은 이제 멱살을 잡고 있다. 문화수도라는 플래카드가 ‘장밋빛 미러를 약속이나 하는 것 처럼 걸렸다. 수많은 촛불 행렬의 기억도 녹아 있다. 그 때 산화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자 한 광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주최측이 밝힌 기획의도는 이렇다.
“다시 5월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바로 눈앞에 있는 반민주, 억압적인 정권의 행태를 마주하며 5월을 기억하고 기념만 해도 되는 것일까?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5월을 노래하지 말아라’라고 한 시인의 절규처럼 예술가들에게 5월은 서정적인 것이 아닌 당대적인 현실을 돌아 보게 하는 지침이다. 예술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어야 하고 어둠이 깊을수록 예술가는 더듬이를 예민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은 상대적으로 덜 권위적이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장치가 상당히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예술이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할 때이다.”
김광철 김병택 김우성 김재성 김화순 박철우 이승미 임남진 조현 최진우 허진 허달용 최대주 염원선 김명조 장용훈 최재덕 심우성 박미애 임신영 신수련 서동환 씨가 참여했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